천한 음식으로 손가락질 당하던 감자가 영양식으로 각광받는 토대를 마련한 사람은 프랑스의 파르망티에. 그는 1789년 '감자,고구마,돼지감자 재배와 이용에 관한 개요'라는 책에서 감자가 영영가 높은 좋은 먹을거리임을 밝혔다. 이전에 '미천한 식물'로 여겨 재배하기조차 거부당했던 감자가 '영영가 높은 채소'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3500년 전부터 남미 페루 등에서 재배된 감자는 에스파니아의 모험대에 의해 유럽에 전해 졌다. 이 때문에 에스파니아에선 감자가 '밤맛이 나는 속살을 품고 있는 덩이 줄기'로 묘사(책 '에스파냐 연대기,1556년 刊)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감자가 농민들의 저주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발칸반도에선 '마치 프랑스 사람들처럼 비굴하게 땅 속에 몸을 숨기는 저주받은 채소'라고 불렸다. 마침내 오스트리아 군대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 농민들에게 "감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태형 40대의 형벌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그럴싸한 채소로 뿌리내리는 데 큰 고초를 겪은 감자는 굶주림에 죽어가는 17세기 아일랜드 국민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도 감자는 구황(救荒)식물로 민초들의 목숨을 건진 사례가 매우 많다. 

 


Texas Lunch
Texas Lunch by caribb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by A&Z 2010. 12. 2. 07:00
| 1 |